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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51-12번지'전 서문 

 

 

 

삶과 장소에

 

 

쳐진 예술

 

- 아티스트들의 청량리 잠입사건 -

 

 

글 / 김주원(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실장)

 

 

아트여! 청량리를 기억하라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도시서민의 소비와 일탈에의 욕망이 넘실되는 청량리는 알다시피 교통의 요지다. 이와같은 성격의 공간이 대부분 그렇듯이 청량리 역시 많은 이들에게 주거 공간이기보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스치고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전형적인 현대인으로서의 유목민, 그들의 공간이다. 청량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기억들-예컨대 ‘M.T.’, ‘경춘선’, ‘588’, ‘청과물시장’, 70년대 후반 도심에 건축된 대단위의 복도식 ‘미주 아파트’ 등등-에서 풍기는 독특한 공간적 위상에서 청량리의 성격은 더욱 명료해 진다. 푸른 숲 속에 맑은 샘물이 흘러 여름철엔 도성사람들의 피서지였다던 청량리는 근대화바람에 밀려 이제는 어느새 쓸모 잃은 오래된 물건처럼 되 버렸다. 도시서민들에겐 그들의 한숨과 애환, 판타지 등이 혼재하는 특정한 장소성을 지닌 공간이지만, 반면 그 흔한 미술관, 갤러리를 비롯한 이렇다할 문화공간 한 곳 없는 그야말로 문화소외 지역이기도 하다. 즉 예술의 ‘중심’에서 철저히 은폐되거나 고립되어 있는 장소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아티스트들에게 청량리는 매력적이다. 이것은 적어도 단일하고 일관된 신념체계로서의 ‘죽음’을 목전에 둔 ‘주체(subject)도, 확고한 규범으로 고정된 주체도 이미 존재치 않았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부터 가변적 위치들(places)에 머물렀으며 무수한 익명의 중얼거림만 있었던 듯한 청량리…. 김명기, 문웅재, 백민주, 유영국, 윤현, 장우영, 정지혜, 주희란, 황상백 등 9인의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청량리에 대한 ‘기억’과 그 전복에의 시도를 미주아파트 상가 뒤쪽 골목의 51-12번지에서 시도하고 있다.

 

장소의 발견 - 삶의 발견

전시장소인 ‘청량리 51-12번지’의 비좁고 천정이 낮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29평 남짓한 지하창고가 열린다. 전시를 위해 이들은 가벽을 설치하고 10개로 공간을 나누었다. 중세 크리스트들의 지하묘굴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이 건축적 실내는 관람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구획을 설정해 주는데, 이는 장소에 대한 이런저런 인상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부스스한 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어슬렁거리던 익숙한 동네 골목, 새벽녘 싸구려 여관을 둘러싼 스산한 공기가 좁다란 골목, 서로의 몸을 부딪쳐야만 지날 수 있는 생경한 골목 등등등.

이미지로서의 공간구획이 아닌 실제 장소 체험을 더욱 촉발시키는 것은 골목 안 한켠한켠의 방안을 들어섰을 때 만날 수 있는 각기 다른 9인 9색의 작업들이다. 관람자가 ‘청량리 51-12번지’에 오면서 지나쳐 온 어떤 곳들은 3차원적 공간으로, 특정한 장소의 간판들은 2차원적 평면으로 풀어내어 새롭게 일상화된 공간의 체험을 촉진하는 주희란, 지하라 있을 수 없는 창문을 가짜로 설치하거나 언덕과도 같은 계단을 설치하여 구획된 도시를 조망케 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윤현, 작가 개인의 기호와 사회가 만나 형성된 이미지들이 현실과 가상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새로운 상징과 기호체계를 보여주는 김명기 등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을 것만 같은 답답한 일상의 중성적 공간을 ‘특정한 장소’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한편,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서울시 관광지도의 하천만 오려 내거나 1달러짜리 지폐의 주요 이미지들을 오려내는 방식을 보이는 문웅재, 자신에게만은 미지의 ‘공포’였던 소리를 시각화하여 고안한 캐릭터 ‘몰랑이’를 전시장 곳곳에 숨겨놓거나 그것을 게임으로 만들어 공포를 ‘유쾌함’으로 극복시킨 백민주, 좁게 구획된 지하공간처럼 비좁음에 눌리고 낮음에 압박받은 변형된 인체조각을 설치한 장우영, 괴물처럼 보이는 어린아이의 독사진이나 그 아이와 함께 한 성인남녀의 기괴한 사진이 걸린 어느 집안의 풍경을 제시한 유영국, 화가에게 있어서 형과 공간의 문제를 모색하는데 중요한 장르의 하나였던 정물화를 관람자가 주체가 되어 사물의 선택 및 구성 등을 통해 관람자의 정물화를 완성하게 하는 황상백, 빛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자신의 그림자와 자신이 보았던 청량리 사람들의 그림자를 정육면체 아크릴 박스 안에 가둔 정지혜 등의 작업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 읽혀진다. 존재감을 무화시키거나 극대화 시키는 이들의 제스처들은 일종의 인간과 삶의 복원을 위한 몸짓이다.  


그렇다면, .... ‘청량리 51-12번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문웅재 작가는 여객녹림(저)과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입니다.

형님은 작품활동을 안하신지는 꽤 되었다고 합니다.


한강에서 작품을 찢어 버리고 태우고...


환경오염을 하셨네요??


하여간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겠다 하셨다는데 작품을 찾으러 검색을 하다가


이 글을 찾았습니다.

저 하이라이트 친 부분!! 


왜냐면 저 작품을 제가 소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찾아서 근사하게 전시 해두어야겠습니다.(제가 속물이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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